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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지원 댓글 0건 조회 549회 작성일 20-11-16 12:54본문
“묘회 구경을?”
“예, 제가 가끔 소향촌까지 내려가 보기는 했지만 묘회는 한번도 구경해 본 적이 없어요. 스님들 말씀에 볼거리가 많대요.”
법공대사는 사자수염을 어루만지고는 힘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삼십 년 면벽 수행을 한 선승도 토굴에서 나오면 세상 소식을 궁금해 하는데 어린 네가 세상에 대한 동경을 품는 것은 당연하겠지. 소향촌 출입은 계율원 소관이니 어렵지 않다. 열심히 수행하고 있으면 좋은 소식이 있을 게다.”
“고맙습니다, 사존님.”
용군휘는 환한 표정으로 합장을 올리고는 눈을 치우기 위해 달려갔다.
법공대사는 그와 좀 더 얘기를 나누지 못한 것이 아쉬운 듯 연신 입맛을 다셨다.
“허허, 고놈 참. 언제 저렇게 컸어. 옹알거리며 내 수염을 움켜쥐었던 갓난아이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말이야.”
춘절
새해 첫날을 일컫는 춘절은 사대명절 중 하나로 손꼽힌다.
춘절서부터 최고의 명절이라는 정월 보름인 원소절까지 민간은 어디를 가도 명절 분위기에 들떠 있다. 대륙 북방에서도 추운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는 시기이기에 사람들이 왕래와 물자의 교류가 빈번해진다.
묘회는 명절 즈음에 사찰이나 공묘(孔廟: 공자를 모신 사당), 관제묘 부근에서 개최되는 민간 공연을 말한다.
묘회에서는 다양한 볼거리가 제공된다.
춤꾼, 가인, 악사들이 자신들의 재주를 뽐내고 희사금을 받는가하면 유랑극단의 공연도 전개된다. 볼거리가 풍부하니 사람들이 많이 몰리고 자연히 먹거리 장터도 생겨난다. 또한 공예품과 각 지역의 토산품이 전시되면서 묘회는 신명나는 축제로 발전하게 되었다.
천하제일의 대사찰 소림사 근경에서 묘회가 열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소림사는 무림계에서도 유명하지만 불심이 깊인 신도들에게는 영험함으로 더 유명한 사찰이다. 매일 같이 소림사를 찾는 방문객만 수백 명이며 각 전각에서 치러지는 불공만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소향촌.
소림사 산문과 인접한 마을은 불제자들이 부처님께 올릴 홍초와 향을 주로 판매하기에 소향촌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곳 소향촌에서 벌어지는 묘회는 하남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고 소문날 만큼 유명했다. 그렇기에 춘절 전부터 상인들이며 유랑극단들의 자리다툼이 치열했다.
그러나 소향촌에서는 함부로 주먹다짐을 벌일 수 없다.
묘회의 질서를 감독하고 쾌적한 공연 문화를 관리하기 위해 소림사의 무승들이 묘회 기간 내내 파견되기 때문이다. 만일 소림 무승의 권고를 무시하면 다시는 소향촌 묘회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기에 대부분의 공연과 상거래는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다.
“와아, 정말 사람이 많네?”
난생 처음 소향촌 묘회를 구경하게 된 용군휘는 발 딛을 틈 없는 인파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해가 바뀌어 그도 이제 열네 살이 되었지만 아직 치기어린 소년에 불과했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소림사 경내에서 지냈기에 오히려 민간의 아이들보다 보고 듣는 게 부족했다. 그랬기에 그는 묘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채고교에도 감탄을 토했다.
채고교란 높은 나무다리에 두 발을 묶고 올라서서 춤을 추며 노래를 하는 공연을 말한다. 채고교를 연출하는 춤꾼이며 노래꾼들은 높은 나무다리 덕분에 키가 일 장에 달해 모든 구경꾼들이 멀리서도 즐겨 볼 수가 있었다.
용군휘가 포함된 소림사 승려 일행은 곳곳에서 전개되고 있는 공연을 구경하면서 장터에 이르렀다.
인솔자는 현어 스님.
그는 주방에서 쓰이는 부식 조달 담당이었다. 소림사에서는 대부분 산에서 나물을 캐고 밭을 갈아 채소를 키워 웬만큼 충당하지만 부족분은 시장에서 들여올 수밖에 없다.
특히 산나물을 캘 수 없는 겨울에는 대부분 소향촌에서 구입해 소림사까지 지어날아야 했다.
용군휘가 부식 조달을 위해 사미승들을 따라 소향촌까지 몇 번 내려온 적이 있었지만 묘회 기간에 소향촌을 방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실 행자들은 아직 수행자 신분이기에 떠들썩한 묘회를 구경하는 것이 금기시 되었는데 이번 춘절부터 규정이 조금 바뀌었다.
계율원 주지인 법공대사가 삼년 차 이상의 행자라면 묘회 기간 때라도 소향촌 출입을 허가한다고 공시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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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제가 가끔 소향촌까지 내려가 보기는 했지만 묘회는 한번도 구경해 본 적이 없어요. 스님들 말씀에 볼거리가 많대요.”
법공대사는 사자수염을 어루만지고는 힘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삼십 년 면벽 수행을 한 선승도 토굴에서 나오면 세상 소식을 궁금해 하는데 어린 네가 세상에 대한 동경을 품는 것은 당연하겠지. 소향촌 출입은 계율원 소관이니 어렵지 않다. 열심히 수행하고 있으면 좋은 소식이 있을 게다.”
“고맙습니다, 사존님.”
용군휘는 환한 표정으로 합장을 올리고는 눈을 치우기 위해 달려갔다.
법공대사는 그와 좀 더 얘기를 나누지 못한 것이 아쉬운 듯 연신 입맛을 다셨다.
“허허, 고놈 참. 언제 저렇게 컸어. 옹알거리며 내 수염을 움켜쥐었던 갓난아이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말이야.”
춘절
새해 첫날을 일컫는 춘절은 사대명절 중 하나로 손꼽힌다.
춘절서부터 최고의 명절이라는 정월 보름인 원소절까지 민간은 어디를 가도 명절 분위기에 들떠 있다. 대륙 북방에서도 추운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는 시기이기에 사람들이 왕래와 물자의 교류가 빈번해진다.
묘회는 명절 즈음에 사찰이나 공묘(孔廟: 공자를 모신 사당), 관제묘 부근에서 개최되는 민간 공연을 말한다.
묘회에서는 다양한 볼거리가 제공된다.
춤꾼, 가인, 악사들이 자신들의 재주를 뽐내고 희사금을 받는가하면 유랑극단의 공연도 전개된다. 볼거리가 풍부하니 사람들이 많이 몰리고 자연히 먹거리 장터도 생겨난다. 또한 공예품과 각 지역의 토산품이 전시되면서 묘회는 신명나는 축제로 발전하게 되었다.
천하제일의 대사찰 소림사 근경에서 묘회가 열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소림사는 무림계에서도 유명하지만 불심이 깊인 신도들에게는 영험함으로 더 유명한 사찰이다. 매일 같이 소림사를 찾는 방문객만 수백 명이며 각 전각에서 치러지는 불공만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소향촌.
소림사 산문과 인접한 마을은 불제자들이 부처님께 올릴 홍초와 향을 주로 판매하기에 소향촌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곳 소향촌에서 벌어지는 묘회는 하남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고 소문날 만큼 유명했다. 그렇기에 춘절 전부터 상인들이며 유랑극단들의 자리다툼이 치열했다.
그러나 소향촌에서는 함부로 주먹다짐을 벌일 수 없다.
묘회의 질서를 감독하고 쾌적한 공연 문화를 관리하기 위해 소림사의 무승들이 묘회 기간 내내 파견되기 때문이다. 만일 소림 무승의 권고를 무시하면 다시는 소향촌 묘회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기에 대부분의 공연과 상거래는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다.
“와아, 정말 사람이 많네?”
난생 처음 소향촌 묘회를 구경하게 된 용군휘는 발 딛을 틈 없는 인파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해가 바뀌어 그도 이제 열네 살이 되었지만 아직 치기어린 소년에 불과했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소림사 경내에서 지냈기에 오히려 민간의 아이들보다 보고 듣는 게 부족했다. 그랬기에 그는 묘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채고교에도 감탄을 토했다.
채고교란 높은 나무다리에 두 발을 묶고 올라서서 춤을 추며 노래를 하는 공연을 말한다. 채고교를 연출하는 춤꾼이며 노래꾼들은 높은 나무다리 덕분에 키가 일 장에 달해 모든 구경꾼들이 멀리서도 즐겨 볼 수가 있었다.
용군휘가 포함된 소림사 승려 일행은 곳곳에서 전개되고 있는 공연을 구경하면서 장터에 이르렀다.
인솔자는 현어 스님.
그는 주방에서 쓰이는 부식 조달 담당이었다. 소림사에서는 대부분 산에서 나물을 캐고 밭을 갈아 채소를 키워 웬만큼 충당하지만 부족분은 시장에서 들여올 수밖에 없다.
특히 산나물을 캘 수 없는 겨울에는 대부분 소향촌에서 구입해 소림사까지 지어날아야 했다.
용군휘가 부식 조달을 위해 사미승들을 따라 소향촌까지 몇 번 내려온 적이 있었지만 묘회 기간에 소향촌을 방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실 행자들은 아직 수행자 신분이기에 떠들썩한 묘회를 구경하는 것이 금기시 되었는데 이번 춘절부터 규정이 조금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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