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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배워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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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rmaskfk 댓글 0건 조회 370회 작성일 20-06-2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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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아들에게로 생각이 미치자석중행은 자신도 모르게한숨이
새어나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이를 이상히 여긴 고패가 물었다.
"아니, 형님. 갑자기 웬 한숨입니까?"
석중행은 왼손 마디마디를 버릇처럼 문질렀다.
"자네도 알다시피 내게는 무종이가 유일한 자식일세. 그런데 장차
표국을 이끌어가야 할 녀석이 그 모양 그 꼴이니 원……."
인정 깊고 의리 있는 호한(好漢)으로, 또 원만한성품에서 비롯된
편안한 인상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진 그였지만 한가지 말못할 회한
(悔恨)은 있었다.

석중행, 그는 본래 무가(武家) 출신이 아니었다.
제남 어느 주가(酒家)에서 숙수(孰手, 요리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
는 두 발로 뛰어다닐 무렵부터 주가의 일을 도왔고, 좀더 커서는 국
자[玉勺子]로 머리를 두들겨 맞아가며 요리를 배워야만 했다.
하지만 그의 꿈은 결코 주가에 있지 않았기에 열 여덟이 되던 해,
청운의 큰 뜻을 품고 집을 뛰쳐나와 표국에 몸담았다.
숙수 일로 단련된 팔 힘은 검을 잡고도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곧
표국주의 제자가 되었으며 표사로도 발탁됐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표국주의 무남독녀와백년가약(百年佳約)을 맺어표국을 물려받을
처지가 됐다.
하지만 전도양양(前途揚揚)해 보이던 석중행의인생도 그리 쉽게
풀리진 않았다. 사랑하던 이의죽음이 그랬고, 그충격으로 기력을
잃은 장인으로부터 급작스레 표국주 자리를 물려받은 일이 그랬다.
열 여덟 늦깎이로 무공에입문한 만치, 내외공(內外功)에있어서
높은 경지로 가는 발걸음은 더뎌지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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