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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개근하면 ‘평일에 놀러갈 형편이 안 되는구나’라고 생각한대요. 그 얘기 듣고 진짜 깜짝 놀랐어요. 우리 땐 개근은 성실과 같은 개념이었는데 요즘은 안 그렇대요.” (맘카페 회원 A씨)
2019년 말, 초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들이 활동하는 맘카페를 아연실색하게 한 단어가 있다. 바로 ‘개근거지’다. 학교를 빠지지 않고 개근하는 학생은 교외 체험 학습으로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는, 형편이 어려운 아이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해외여행이 제한되면서 이 말도 자취를 감춘 듯싶더니, 올해 초 해외여행이 본격 재개되자 귀신같이 다시 등장했다.
서울 한 사립초에 아이를 보내는 회사원 B씨는 최근 부랴부랴 대만행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학부모가 모여 있는 단체 채팅방에서 “어린이날 연휴에 해외 어디 가세요?”란 질문이 나오자 사람들이 일본, 싱가포르, 베트남 등 다양한 나라를 말하는 것을 본 게 계기였다. 김씨는 “다들 나간다고 하니, 우리 아이만 어디 못 놀러간 애 될까 봐 급하게 (여행을) 예약했다”고 했다. “요새 ‘개근거지’란 말도 있다더라. 아이가 저학년이라 직접적으로 그런 놀림을 받을 거라곤 생각 안 하지만, 지레 위축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자신의 아이가 ‘가난한 아이’로 낙인찍힐까 봐 걱정하는 부모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 맘카페 등 인터넷 커뮤니티엔 ‘개근거지’란 말에 대해 씁쓸해하면서도, 해외여행을 가야 하느냐는 질문이 여럿 올라왔다. 40대 워킹맘 C씨는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해외여행 못 가보고 학교만 다니는 애는 우리 반에 나 하나밖에 없다’며 울더라”며 “그때 큰 충격을 받았다. ‘요즘 애들은 꼬박꼬박 학교 나가는 것을 창피해한다’는 걸 깨달았고, 이후로는 좀 무리를 해서라도 일년에 한두번 정도는 (해외에) 나가려고 하고 있다”고 했다.
경기도 한 초등학교에서 담임을 맡고 있는 교사 D씨는 “확실히 예전보다 해외여행 경험이 있는 학생이 많고, 체험 학습을 신청하면 출석 인정이 되기 때문에 부모도 학기 중에 (해외에) 나가는 것을 꺼리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학기 그의 반 학생 24명 중 3명은 이미 해외를 다녀왔고, 5명이 해외에 나갈 계획이 있다고 했다. 그는 “(해외에) 가지 않는 학생들도 있다. 한번은 (여행을 안 가는 아이에게) ‘너희 집은 왜 못 놀러가? 거지야?’라고 묻는 아이를 봤다. 그 이후로는 의식적으로 학생들에게 외국 다녀온 얘기는 묻지 않고 (체험 학습) 과제만 받는다. 외국에 다녀와 기념품 나눠주는 것도 금지했다”고 했다.
‘개근거지’와 같은 학교 안 차별과 혐오 표현은 유서가 깊다. 주거 형태와 ‘거지’란 단어를 합성해 만든 ‘○거지’ ‘○거’란 표현은 1990년대부터 있었다. 최근엔 중증 결핵 예방을 위해 아이들에게 접종하는 BCG 백신 흉터도 놀림의 대상이라는 목격담도 나온다. 주사형(피내용)은 무료이고 도장형(경피용)은 유료인데, 몇몇 아이가 주사형으로 맞은 친구들을 ‘공짜 백신 맞은 거지’라며 놀린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장난처럼 쓰는 혐오 표현이 어른들의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방치하면 큰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희정 국민대 교수는 논문 ‘학교 공간의 혐오·차별 현상 연구’(2021)에 이렇게 썼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정서적·제도적 차별과 혐오의 말은 학교 공간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정과 사회로부터 학교 공간으로 고스란히 흘러들어 펼쳐지고 있을 뿐이다.”
김영심 숭실사이버대 교수(아동학)는 “아동·청소년기에 ‘개근거지’와 같은 말을 들은 아이는 평생 그 말을 상처로 안고 살아가게 될 것”이라며 “아이들은 어른들이 쓰는 나쁜 표현들을 학습해 발화하는 것이므로, 어른들이 먼저 반성하고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나쁜 말을 쓰면 선생님이 그러지 못하게 가르쳤는데, 요새는 그런 지도가 잘 되지 않는 것 같다”고도 했다.
별 거지같은 단어가 다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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